많은 게 마무리되고 결정된 상반기가 마무리됐다. 어딘가 오래 머물며 고이게 된다는 건 그만큼 엉덩이를 털고 다시 일어나기에도 더 많은 고민과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 4년의 박사과정 동안 이곳의 삶에 생각보다 깊게 안착했고 그만큼 떠날 결심을 한다는 것은 지금의 균형을 버릴 용기가 필요했고 안정을 원하는 내 안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해야 했다. 왜 추구하냐, 선택하냐라는 질문에 대한 뚜렷한 답이 있었던가? 사실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있어 그저 내 안의 이성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선택해 왔던 거 같다. 이성과 감성은 중요한 결정에 있어선 늘 불협화음을 내는지라, 그리고 내 감성은 늘 나약한 내 멘탈을 보호하는 방향인지라 감성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결론은 늘 아무것도 하지 않기임을 알기에 끔찍하게 싫어도 일단은 ..
4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의 지원, 그 끝에 드디어 한 곳으로부터 오퍼를 받게 되었다. 먼저 졸업 후 포닥을 하러 떠나간 친구들이 계속해주던 말, 하나의 Yes 만 있으면 된다고, 힘내서 계속 지원하라고, 그 하나의 Yes를 받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도 몰랐고 이렇게까지 감정 소모를 하게 될 줄도 몰랐다. 늘 이도 저도 안되면 그냥 한국 가지 뭐,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졸업은 계속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해진 자리도 없고 정해질 기미도 안 보이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한국을 돌아갈 때,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실패는 아니길 바랐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정처 없이 그저 귀국길에 오르는 내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더 조바심 났고 더 힘들었다. 4월까지는 그래도 꼬박꼬박 뜨는 포닥 자리를 찾아 지..
04.21.2026. Postdoc 지원은 지난 2월 9일부터 계속되어 벌써 2개월이 넘었다. 고로 불안정한 나의 심리 상태와 오락가락하는 너울 같은 기분도 어느덧 두 달째. 이럴걸 너무 잘 알아서 한 두달 안에 얼른 뭐라도 확정돼고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아직은 뭐하나 뚜렷한 진전없이 가시거리 1m 안갯길 같은 상태다. 그래도 컨텍 메일에 없는 반응, 거절의 메시지 하나에 무너져내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몇 주 전과 비교해선 많이 안정된 것 같기도. 얼마전 인스타였나? 정신과 의사가 본인의 실패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조용히 숨기려하는 심리가 위험하다고 했다. 왜 어떻게 위험한지는 기억에 안 남았지만 불현듯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Postdoc 지원을 어디 했는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Postdoctoral Fellowship 지원을 위해 한참 Research proposal 을 작성 중이었다.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고 묵혀둔, 잊고 있던 블로그가 떠올랐다. 미국에 온지 한달 됐을 때 쓴 일기를 마지막으로 벌써 3년이 넘게 흘러 지금은 박사과정 4년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을 그때의 기분과 함께 생생하게 기록해두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지금이라도 종종 남은 1년 간의 기록을 남겨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기록을 남기는 건 좋아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 뭔가 장황하게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매번 귀찮음이 압도하여 미뤄뒀던 것 같다. 지금부턴 그저 생각나는 말만, 하고 싶은 말만 짧게라도 남겨둬야지 어차피 나를 위한 기록이니까. + 미국에서 3..
한 번에 몰아서 쓰는 며칠 동안의 일기. 지난 금요일에만 마음 아픈 소식을 두 가지나 들었다. Rao 교수님 방의 박사과정 신입생 Ellen이 며칠 째 안보이길래 그 방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할머니께서 위독하셔 이번 학기 등록을 취소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마음이 아팠다. 다음 학기에 돌아올 예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안 돌아올 것만 같다. 지난 몇 주간 Ellen은 끊임없이 실험실과 교수님 오피스를 오가며 시달리고 있었고 앞으로의 몇 년을 생각한다면 안 돌아올 확률이 크지 않을까. 그리고 Frank. 아버지께서 췌장암이라고 하신다. 병원에서 진단하기론 앞으로 6개월이 남으셨다는데 너무 빠르게 뇌, 간, 골수 등으로 전이가 일어나고 이미 의식까지 흐려지신 상태라 Fra..
원래대로라면 오늘도 9시부터 18시까지 워크샵이지만 어제 하루 듣고서 지금의 내 영어로는 앉아있어 봐야 남는 게 없을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나중에 영어가 조금은 더 편해졌을 때 다시 오던가 그 분석들이 필요해졌을 때 비슷한 강의를 찾아 듣던가 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Cell and molecular biology 수업에 들어가서 내내 졸다가 나왔다. 들리는 건 없고 잠은 부족해서 앉아있으면 잠만 계속 온다. 잘 모르는 개념의 강의에 교수님의 독특한 발음까지 더해져 더더욱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 강의는 과제도 발표도 없어서 마음은 편하다. 한 학기 동안 총 6번의 시험이 있다는 게 유일한 문제점. 수업이 끝나고는 J형을 잠깐 만났다. 점심을 먹기 애매해 의대 건물 근처에 스무디킹이 있..
미국에 도착하고서 내 하루하루 소중하게 기록으로 남겨놓겠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왔는데 소홀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 우선순위에서 미루다 보니 중간 기록이 하나도 없다. 지난 일기로부터 오늘까지, 그 기록만 모아도 책 한 권은 나올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 더 많은 기억을 잃기 전에 하나하나 복원해 기록을 남겨야지. 우선 집. 첫째. 계약하는 그 순간부터 시끄러울 거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도가 지나치게 시끄럽다. 개강하기 직전 목요일인 8월 18일 저녁부터 시작된 소음. 그래도 그날엔 자세히 귀를 기울여야만 들리던 소리가 토요일쯤 되니 온 집안을 울린다. 그래도 다행히 2시가 되면 1분도 늦지 않고 음악이 꺼진다. 요즘 2시 전에 잠드는 건 사치라... 아직까진 잠을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다. 둘째..
주말이 끝나도록 기분은 바닥을 쳤다. 복합적으로 좌절감은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며칠 동안 말할 사람 없이 입을 닫고 지내다 보니 외로움은 점점 커져만가고 자꾸 한국에서의 추억들,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자기 직전 유튜브에서 찾아본 미국에서의 정착, 유학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영상이 많은 위로가 됐다.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많은 사람들이 초기에 어려움을 겪는구나, 위안이 됐다. 도착한 당일 혹은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같은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만 개복치라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오늘, 생각보다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렸고 정해진 대로 흘러갔다. 내가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잘 마무리했다는 그 성취감이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고 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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