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04.21.2026.

 

Postdoc 지원은 지난 2월 9일부터 계속되어 벌써 2개월이 넘었다. 고로 불안정한 나의 심리 상태와 오락가락하는 너울 같은 기분도 어느덧 두 달째. 이럴걸 너무 잘 알아서 한 두달 안에 얼른 뭐라도 확정돼고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아직은 뭐하나 뚜렷한 진전없이 가시거리 1m 안갯길 같은 상태다. 그래도 컨텍 메일에 없는 반응, 거절의 메시지 하나에 무너져내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몇 주 전과 비교해선 많이 안정된 것 같기도. 

 

3월 Spring break에 다녀온 Rainbow spring state park. 찍을 땐 그냥 맑다라는 생각 뿐이었는데 지금보니 보석 원석 같다.

 

얼마전 인스타였나? 정신과 의사가 본인의 실패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 조용히 숨기려하는 심리가 위험하다고 했다. 왜 어떻게 위험한지는 기억에 안 남았지만 불현듯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Postdoc 지원을 어디 했는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숨기고 있다는 게 깨달으며 내가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그런 심리를 가진 사람인가 흠짓했다. 가족들에겐 괜한 기대심을 가지게 하거나 (물론 내 순전한 착각 + 기우) 굳이 내가 또 이렇게 힘들어 알리고 싶지 않아서 구구절절 말 안한것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 안한건 만약 내가 포닥 잘 안됐을 때 그들이 내 실패를 위안삼을까봐, 혹은 나의 결과를 하찮게 여길까 두려워 숨기려 한 것이 사실이고, 그렇다면 나는 그 의사가 말했던 위험한 심리를 가진 게 맞다. 그런데 얼마전 엄마, 동생과 통화를 하다가 깨달았다. 아무한테도 말 안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가 편하게 생각하거나 나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을거란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겐 말했더라고. 고로 방어기제가 존재한 것은 맞으나 그간의 경험으로 내게 안정감을 주는 사람들에겐 스스럼없이 공유해오고 있었다는 깨달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늘도 Christin 한테 지난 주에 Postdoc 관련해 무슨일이 있었는지 다 털어놓고 있는 나를 발견. 

 

3월 말 멘델스존 최애곡 들으러 잭슨빌 가는 길. 운전, 재미있는데 딱 한시간까지가 한계.

 

박사 초기를 제외하곤 생각보다 굴곡 없던 지난 4년이라 한동안 잊고 살다가 요즘 Postdoc 지원으로 생각보다 깊은 굴곡을 다시 경험하며 내 취약함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뭐랄까, 취약점을 깨달은 후에 보완을 하거나 견고해질 수 없다는 깨달음도 함께 점점 견고해진달까? 그래도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걸 아니까 이 지랄맞은 기분의 널뛰기도 곧 마무리되겠지 가만히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되었달까. 생각보다 그런 우울의 굴곡을 지날때면 일기장을 찾는 빈도가 높아지는데 생각을 정리해서 뭐라도 쓰다보면 약간 편해지는 마음? 감정 쓰레기통 같이 활용하며 토해내다보면 찾아오는 약간의 후련함. 그래서인지 지난 일기들을 읽다보면 전반적으로 어두운데 그만큼 자기 성찰과 깨달음도 많이 적혀있어 과거의 나에게 한 수 배운다. 오랜만에 펴본 일기장에서 오늘도 한 수 배웠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내 기분을 나아지게하려 말자. 나 뿐만이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다." 너무 맞말. 타인에 대한 기대로, 타인으로부터 위로를 바라다가 더 마음 다칠 바에 평타는 칠 수 있게 내 스스로 잘 다독이는 게 경제적으로도 맞다. 

 

우울함의 근원은 때론 사건, 때론 사람. 사람이 원인일 때, 생각보다 마음 속에서 빠르게 손절 후 '증오' 로 격화시키는 게 그나마 다행. 대부분 '증오'가 '우울'보단 나를 갉아먹지도 않고 생각보다 무언가 열심히 할 계기도 제공해준다.

 

 

 

05.02.2026.

 

쓰다가 귀찮아져서 임시저장만 하고 마무리한 기록에 이어 쓰기.

 

일주일 째 학교에서 매일 14시간 넘게 보내고 있다. 박사 논문 마무리를 위한 실험들, 도저히 예정한 모든 실험들을 박사 논문 초안 제출일까지 마무리하지 못할 거 같아 일부라도 (나머진 Defense 전후로 마무리 해야지... committee 가 제발 그 실험은 했냐고 안물어봐주길 바라며...) 최대한 빨리 끝내보려 학교에서 버티고 있다. 한 플레이트 당 qPCR이 완료되기 까지 1시간 44분이 걸리는데 돌려야하는 플레이트만 70개가 넘고 기계간 variation을 고려해 실험실에 있는 다른 qPCR machine 을 쓸수도 없어 한 기계로 끊임없이 플레이트를 준비하고 갈아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탓에 지난 주말엔 실험실에서 에어메트리스 깔아놓고 자면서 밤새 갈아줬다. 그래도 많이 진척되어 이번 주말이면 얼추 마무리 될 듯.

 

집 앞 야자수 나무와 여름 구름. 플로리다는 더워서 싫지만 야자수와 여름에만 볼 수 있는 풍성한 뭉게구름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라 다른 주로 이동하면 아마 이건 그리울 것 같다.

 

Postdoc 지원 결과는 여전히 오리무중. 얼마전 박사과정을 같이 시작한 친구들을 만났는데 ChatGPT로 사주를 보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런거 믿지도 않고 중요한 결정을 사주에 맡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상황이 절실하니 못 이기는 척 내 정보를 입력해봤다. 근데 올해 뭐 역마에 운이 있고 커리어에 큰 전환이 있다며 올 5-7월에 직장을 옮길 사주란다. 친구들이랑 헤어지고 집에와서 그럼 정확히 오퍼를 받을 날짜는 어디냐, 미국 어디로 옮길 사주냐를 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미쳤나 싶으면서도 뭔가 이 말도 안되는 사주에서라도 희망을 붙잡고 싶었다. 또 커리어운은 있으나 내가 노력해야 그 운을 잡을 수 있으니 '여기는 너무 높아서 안될 거 같아' 싶은 곳이라도 계속 지원하라는 그 말에 생각보다 큰 힘을 얻음과 동시에 기분도 많이 나아졌다. 사람이 극단에 다다르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다는 게 이런건가 싶으면서도 믿어보고 싶어졌다.

 

얼마전 동네 Art Festival에 갔다가 발견한 그림. 밝고 쨍한 색감, 파스텔톤이 묘한 안정감을 줘서 계속 보고 있고 싶었던 그림. 소장하고 싶은데 가격은 $9,000. 색감 잘 살려 엽서 버전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사주를 본 다음날부터 cold email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울러 한동안 자신감이 바닥을 쳐 여긴 안 될꺼야 그냥 archive에 넣어둔 PI들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첫날엔 총 세 PI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두 분에게 답장을 받았다. 두분 모두 현재 랩에 자리가 없다는 답변이어서 큰 소득은 없었지만 그간 공고를 보고 보낸 대부분의 지원서들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기에 메일을 받은 거 만으로도 놀라웠다. 

 

 

그 중 한분은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주었는데 자리가 없다는 이메일임에도 큰 위안을 받기도,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 연구 이력과 관심이 본인 랩과 아주 잘 일치한다고 말해주는 게 뭔가 내 경험과 시간들을 인정해준 느낌, 그리고 비록 본인의 랩에는 자리가 없지만 주변에 postdoc을 고용하려는 동료가 있다면 나를 소개해주겠다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요즘 하루에도 열 번씩 마음을 다잡고 열한 번씩 무너져 내리는 일상의 반복인데 저 이메일 하나에 하루종일 힘을 낼 수 있었다. 앞으로 한달간 하루에 두 세 분씩 연락을 돌리다보면 누구하나는 긍정의 답을 주지 않을까라는 믿음으로 계속해봐야지. 

 

꽃 향이 너무 좋아서 검색해보니 이름은 Star Jasmine. 학교 오가는 길에 잔뜩 피어있어 요며칠 출퇴근길 소확행이었는데 이제 대부분 시들고 향도 옅어져가고 있다. 슬픔. 나중에 화분에 키워봐야지.

 

한동안 한국 가고 싶다는 생각 없이 살고 있었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고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지다보니 익숙하고 추억이 깃든 사람들과 공간이 그리워지는, 고로 한국이 가고 싶은 요즘이다. 지금 제주가 참 예쁠텐데 한 일주일만 제주에서 생각없이 쉬다오고 싶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