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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의 지원, 그 끝에 드디어 한 곳으로부터 오퍼를 받게 되었다. 먼저 졸업 후 포닥을 하러 떠나간 친구들이 계속해주던 말, 하나의 Yes 만 있으면 된다고, 힘내서 계속 지원하라고, 그 하나의 Yes를 받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도 몰랐고 이렇게까지 감정 소모를 하게 될 줄도 몰랐다. 늘 이도 저도 안되면 그냥 한국 가지 뭐,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졸업은 계속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해진 자리도 없고 정해질 기미도 안 보이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한국을 돌아갈 때,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실패는 아니길 바랐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정처 없이 그저 귀국길에 오르는 내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더 조바심 났고 더 힘들었다. 

 

4월까지는 그래도 꼬박꼬박 뜨는 포닥 자리를 찾아 지원해 나갔는데 5월부터는 졸업 실험과 논문의 마감만으로도 이미 다른 데 신경을 쓸 여유가 전혀 없어 더 속이 탔던 거 같다. 100% 모든 신경을 졸업에만 쏟아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 사이 괜찮은 자리가 뜨면 어쩌나, 못 보고 지나치면 어쩌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31년 인생 이렇게까지 심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나 싶었던 5월과 6월이었다. 타이밍과 운이 실력만큼이나 많은 걸 좌우한다는 건 알았지만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이어진 포닥 지원의 과정은 그 타이밍과 운의 중요성에 대해 더 크게 깨닫고 내 현 위치에 대한 냉철한 판단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지금 얻어낸 오퍼도 타이밍과 운의 절묘한 조합이었을 것. 공고를 발견하고 지원, 인터뷰를 하기까지 과정이 8번의 인터뷰 모두가 너무 천차만별이었고 특히 오퍼까지 이어진 공고는 정말 우연한 발견이었다. 

 

해질녘 아파트 단지 내 야자수와 하늘, 플로리다는 싫지만 야자수가 풍기는 분위기는 좋음.

 

오퍼를 받은 곳의 지원부터 최종 결정까지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중간에 잠깐씩의 기다림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일정 조율의 문제였고 모든 과정이 꽤 빠르게 진행된 거 같다. 

 

1. 5월 13일 수요일: 공고의 확인 및 지원

 

사실 처음에 공고를 봤을 때, 이게 실제 postdoc recruitment가 맞는가 반신반의했던 거 같다. 보통 공고가 올라올 때, 여러 웹사이트를 통해 같은 공고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Linkedin, HigherEdJobs, Indeed 등) 이 공고는 딱 한 웹사이트, jobrxiv (https://jobrxiv.org/) 에만 올라와있었다. 예전에 이런 공고의 경우, 사이트의 설정 때문인지 몇 년 혹은 몇 달 전의 공고도 반복적으로 재업로드되는, 결과적으로 현재 모집 중이지 않은 경우가 꽤 있었어서 처음엔 그냥 넘기려다가 혹시 모르니 지원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됐다. 공고 자체는 4월 27일에 업로드됐으니 업로드 시점으로부터 2주를 조금 넘겨 지원했던 상황.

 

2. 5월 18일 월요일: 첫 인터뷰

 

지원에 대한 답을 받은 건 이틀 뒤 금요일이었다. 여느 답신과 같이 지원과 관심에 감사하다는 인삿말과 함께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에 바로 인터뷰가 가능하냐는 요청을 받았다. 주말 동안 인터뷰 준비를 하기에 충분했으므로 바로 가능하다고 답신. 다만 랩의 분야가 내가 해왔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같은 microbiome을 중심으로 연구하지만 그간 내가 해왔던 연구는 좀 더 wet lab에 focus를 맞춘 preclinical mechanistic study (아마도 70% wet lab, 30% dry lab 정도의 비중)라면 지원하는 랩은 완전히 computational biology 이자 systems biology를 중심으로 하는 100% dry lab이었기 때문에 해당 랩에서 진행되는 모든 연구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공고에 나와있는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을만한, 분석적으로 방법론이 겹칠만한 논문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아울러 dry lab 관련하여 필수적인 프로그램 언어와 소프트웨어는 경험해 봤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을 정도로 프로그램 이름들과 방법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렇게 월요일, 인터뷰는 교수님과 포닥 한 분이 참여하여 약 50분 정도 이어졌다. 교수님이 먼저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이후 내가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간략하게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분석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질문이 들어왔고 나는 ~ 분석기법, 소프트웨어를 활용했다 답변하면 분석 아이디어를 더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아이디어가 어디 있어, 분석하면서 결과에 따라 필요한 분석 덧붙여가는 거지--라고 말할 순 없으니 대략적으로 진행했던 분석들을 예시로 들며 A 결과를 얻었을 땐 B 방향에 대한 추가적인 확인을 위해 C를 분석해 보는 방향으로 이어나갔다 정도로 답변). 한 달 만에 기억이 많이 흐려져서 + 다른 인터뷰의 기억들과 짬뽕되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간간히 포닥분도 질문을 주셨고 여기까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수님께서 인터뷰 말미에 기본적인 통계에 대한 센스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며 질문을 주셨는데 그간의 인터뷰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참신한 (?) 그리고 당황스러운 문제 두 개가 주어졌다. 

 

(1)  토요일에 비가 올 확률이 30%, 일요일에 비가 올 확률이 50% 라면 주말에 비가 올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교수님이 뜻한 건 주말 모두 비가 올 확률이었는데 질문 자체는 "주말에 비가 올 확률"이라 질문을 들었을 땐 더 헷갈리고 당황)

 

> 질문을 들었을 때 갑작스러운 통계 질문에 머리가 그대로 멈춰버렸다. 머리는 멈췄고 침묵을 이어갈 수는 없으니 뭐라도 대답을 해야 했고 결국 틀린 답을 말했지만 교수님이 추가로 동전 던지기의 확률에 대해 재질문을 하며 힌트를 주셨고 맞는 답을 말할 수 있었다 (답은 그저 단순 계산 0.3 x 0.5 = 15%). 다만 그 이후에도 그럼 동전 던지기의 확률을 날씨 문제에 대입하면 뭐겠느냐 등 추가 질문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질문의 의도를 이해 못 하겠는 상태, 고로 답변도 하지 못했고 이어지는 교수님의 설명도 엥? 하면서 들었다. 

 

(2) 만약 100가지의 미생물이 포함된 군집에 대해서 differential abundance 분석을 진행하고 어떠한 유의성 결과도 얻지 못했을 때 우연하게 몇 개의 미생물에 대해서 유의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 질문을 들었을 때 false-positive 를 의미하는 거 같아 질문이 false-positive를 묻는 거냐 되물으니 맞다 아니다도 아닌 애매한 답을 주셔 대략 3-4개 아니겠냐 하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답이 떠오르질 않아 한참을 침묵을 이어가니 답은 5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니 그럼 false-positive에 대한 질문이 맞잖아? 5보다 낮은 숫자를 말하면 맞는 거 아니겠는가 싶었지만 대충 내가 질문의 의도는 파악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싶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이후 네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와 같은 생각보다 정석적인 면접 질문이지만 그간의 면접에선 들어보지 못한 질문에 약간의 당황과 함께 답변하고 references에게 연락을 취해도 되겠냐는 질문을 끝으로 면접은 마무리 됐다. 

 

3. 5월 21-22일 목-금요일: Reference check & on-site 인터뷰 요청

 

통계 질문들에 대해 너무 엉망진창으로 대답하기도 했거니와 교수님의 태도도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기에 망했다 생각하고 기대감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인터뷰 날로부터 3일 뒤 지도 교수님께 reference check 요청이 들어와 두 분이 금요일에 통화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referece check이었고 보통 reference check이 마지막 단계인 경우가 많기에 혹시 이렇게 빠르게, 예상치도 못하게 오퍼를 받는 건가 기대감이 갑자기 커졌다. 그렇게 현재 지도 교수님과 지원 랩의 교수님 간의 통화가 금요일 오전 중에 진행되고 몇 시간 뒤, 지원 랩의 교수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메일의 내용은 on-site 인터뷰 초청. 분명 좋은 일이고 기회인데 이상하게 기운이 빠졌다. 포닥 지원이 on-site 인터뷰까지 가는 경우가 많이 없기도 하거니와 졸업논문의 마감으로 이미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라 인터뷰는 또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걱정이 더 앞섰다. 교수님이 제시한 날짜는 일주일 뒤인 5월 28일과 3주 뒤인 6월 11일이었다. 다만 논문 초안의 마감일은 6월 8일, 디펜스 날짜는 6월 18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인터뷰를 빨리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싶어 5월 28일에 진행하고 싶다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인터뷰는 이틀 동안 진행될 것이며 중간에 1시간 발표, 1시간의 질의응답을 포함한 두 시간가량의 세미나도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 도저히 일주일 안에 모든 걸 준비할 자신이 없어 (이 시점 나는 아직도 한참 졸업 데이터 분석을 진행하던 중) 6월 11-12일로 인터뷰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

 

인터뷰하러 뉴욕 가는 길, 애틀란타 경유 중. 뉴욕까지 가는 내내 자신감은 하나도 들지 않고 끊임 없는 불안과 절망감만 들어 너무 괴로웠던 인터뷰 하루 전.

 

 

준비할 시간이 3주가 있음에도 3주 중 온전히 인터뷰 준비에 투자할 수 있는 건 이틀 남짓이었다. 인터뷰가 잡힌 시점에 졸업 논문의 분석을 마무리해 나가는 단계였고 논문의 작성을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만에 마무리해야 했기에 그 기간 동안엔 인터뷰를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얄궂게도 또 인터뷰를 가는 주에 두 개의 포닥 Zoom 인터뷰들이 잡힌 탓에 그것들을 동시에 준비하느라 결과적으론 PPT를 완성은 화요일, 발표 연습은 수요일 뉴욕을 가는 길 공항에서, 비행 중에 할 수밖에 없었다. 다 잡으려다 다 놓칠 것만 같은 미칠듯한 불안감과 하루 만에 발표 준비를 완전히 마칠 수 없을 거란 절망감이 온통 뒤섞여 뉴욕을 가는 내내 온갖 불길한 상상들과 불안이 끊임없이 엄습했다. 

 

Newark 공항에서 Upper West Side에 위치한 호텔로 이동하는 우버에서의 기록. 이땐 당장의 인터뷰보다도 떨어졌을 때 내가 회복이 가능할지가 더 걱정됐다.

 

4. 6월 11-12일 목-금요일: On-site 인터뷰

 

대망의 인터뷰 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인터뷰와 세미나가 진행될 전공 건물로 향했다. 건물의 입구에서 인터뷰 일정을 안내해주고 이틀간 나를 도와주기로 되어있던 박사과정 학생분과 우연하게 마주쳐 인사를 하며 연구실로 향했고 도착하고 곧바로 스케줄에 따라 1:1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반적인 인터뷰의 일정은 미리 사전에 공지가 됐었고 다음과 같았다.


1일 차

09:00-12:00   6명의 박사과정 및 포닥 연구원분과 1:1 인터뷰 (각각 30분씩)

12:00-13:15   양일간 따로 인터뷰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네 명의 박사과정 학생과 점심 식사

13:15-14:00   지도 교수님 (PI) 과의 인터뷰

14:00-16:00   연구 발표 세미나 (1시간 발표 + 1시간 질의응답)

16:00-16:45   Collaboration 진행할 lab member와의 만남 및 lab 답사

16:45-17:30   Collaboration 진행할 교수님 (Co-PI) 과의 인터뷰

 

2일 차

09:00-11:45   추가 4명의 박사과정 및 포닥 연구원 분과 1:1 인터뷰 (각각 30분씩)


 

Reddit, 하이브레인넷 같은 곳에서 후기도 많이 찾아봤고 on-site 인터뷰는 체력 검정에 가까우니 중간중간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조언들도 접하며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막상 생각보다 대화를 하다 보면 30분은 금방 지나갔고 정신 차려보니 점심을 먹고 있고 그러다 보니 세미나 발표를 진행하며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갔다. 첫 날, 10명의 박사과정, 포닥 연구원분들과의 인터뷰/면담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었다. 가벼운 담소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이야기로 화기애애하게 흘러간 미팅도 있었고 시작부터 내 지식을 테스트해보고자 하는, 해왔던 분야가 꽤 다른데 왜 해당 lab에 지원했는지, 포닥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 해당 lab에서 나만이 가지는 장점이 무엇일지 꽤나 진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미팅까지.

 

 사실 이 과정에서 자존감도 더 떨어지고 결과에 대한 낙관도 거의 사라졌던 거 같다. 일단 누가 봐도 난 너무 다른 걸 해왔고 그들이 가진 전공 지식이 부족하다는 게 대놓고 티가 났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 할수록, 말을 이어갈수록 더 수렁에 빠지는 느낌. 지금 그들은 내 CV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할까 끊임없는 부정의 생각들이 꼬리를 이었고 그럼에도 내 좌절감과 심리를 어떻게든 숨기려 입꼬리 경련 나게 웃어 보이고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떻게든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애를 쓰고 있는 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둘째날, 면접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도저히 뭘 먹고 싶지도 어딜 가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몇 시간을 계속 걸으며 생각을 떨치려 애썼다.

 

더 결정적으로 날 비관에 빠트린건 교수님과의 면담이었는데, 일단 교수님과는 첫 인터뷰를 위해 이동 중 복도에서 만나고 악수 정도만 나눈 상태였고 둘째 날은 교수님의 일정 때문에 부재 중일 예정이었기에 사실상 점심 이후의 45분의 미팅이 이틀 간의 인터뷰에서 1:1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어떤 질문을 하실까 긴장을 하며 교수님의 오피스로 향했는데, 들어서자마자 교수님의 첫마디는 "So, How can I help you." 였다. 처음 면대면으로 마주하는 자리, 어느 정도의 환대와 간단한 small talk을 기대했던 터라 벙쪘다. 당황하지 않은 척, 아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며 염두에 둔 질문들을 하는데 내 대부분의 질문은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었으나 교수님은 프로젝트에 대해선 Co-PI 교수님에게 물어봐야 한다며 본인은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샘플은 Co-PI 교수님의 lab에서 수집이 되고 있는 상태, 그리고 그걸 PI 교수님의 lab에서 분석할 예정, 그 분석을 위한 포닥 자리). 그렇게 준비한 질문의 반절 이상이 날아가버리고 그 외에 lab의 문화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 포닥 진행 중 grant의 작성 등 부수적인 것을 물었는데 답변은 해주나 어디에서도 친절을 느낄 수 없는 건조한 설명들에 zoom 인터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며 그때도 느꼈던 무뚝뚝함과 불친절함이 in person의 상황에선 다르지 않을까 했던 기대감이 흩어져 버렸다. 인터뷰의 결과는 모두의 의견을 종합하여 다음 주 말까지 알려주겠다는 안내를 마지막으로 1:1 인터뷰는 마무리.

 

이후 곧바로 이어진 세미나 발표에서도 교수님은 시종일관 차가운 눈빛으로 발표를 응시하고 때론 핸드폰과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며 누가 봐도 발표에 흥미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오히려 이때부턴 나도 기대감은 진즉 박살 났고 그 태도가 너무 괘씸해 네가 어떻게 행동해도 난 내 갈길을 가겠다는 심정으로 악으로 깡으로 발표와 질의응답을 마쳤다. 이 세미나 발표 때 Co-PI 교수님도 참석하셔 처음으로 뵙게 되었는데 Dermatology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대가이시고 강한 인상과는 달리 너무 따뜻하신 분이었다. PI 교수님께 받지 못한 환대를 이분께 곱절로 받으며 마음도 많이 누그러졌던 거 같다.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고 이렇게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 말씀해 주시는 교수님 말에 눈물 날 뻔. 오히려 내가 해왔던 연구 자체는 Co-PI 교수님 lab의 연구와 더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질문도 많이 주셨고 발표도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뉴욕 3일차가 뉴욕에서 열릴 브라질-모로코 경기 전날이었어서 타임스퀘어 근처는 이미 응원 인파로 난리였다. 미국은 사람이 많이 모인다 = 총기/테러의 위협 수직 상승이라 최대한 빨리 지나쳤다.

 

발표를 마무리하고 Co-PI 교수님의 lab으로 이동해서 그곳의 연구원분들과 또 인사를 나누고 lab을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Co-PI 교수님과 1:1 면담을 진행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시지는 않았지만 분석 관련 경험을 주로 가진 사람을 기대했었는데 내가 발표한 내용이 대부분 wet lab에 대한 거라 약간의 우려가 있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고 졸업 주제에 따라 동물 실험과 wet-lab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긴 했지만 연구실 내에서 내 role은 dry lab, bioinformatics였음을, 그에 따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경험해 봤음을 어필하려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교수님께서는 dry lab 경험만 있는 사람보다 실험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들도 같이 일하기 더 편할 거 같다며 함께 일하길 고대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1일 차 마지막 일정을 끝으로 호텔로 돌아오는 길, 그냥 하루를 끝내기 아쉬워 센트럴파크를 잠시 산책하러 갔다가 10분쯤 걸었을까, 하루 종일 긴장한 채로 앉아있고 서있던 탓인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오며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와 급하게 호텔로 돌아와 옷도 못 갈아입고 그대로 기절했다. 두세 시간쯤 침대에서 못 나오다가 다음 날 인터뷰들 준비하기 위해 겨우 다시 일어났다. 

 

 

둘째 날은 네 명의 박사과정, 포닥 연구원분들과의 1:1 인터뷰가 다였기 때문에 첫째 날보단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일정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만 점심 무렵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연구실을 떠나려 할 때, 대부분은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비운 상태라 일부의 사람들과만 인사를 나누고 연구실을 떠나게 되었다.  대단한 환대를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틀 내내 내가 주로 느낀 감정은 무관심과 미적지근한 사람들의 태도였고 떠나는 순간조차도 배웅 따위는 없었기에, 인터뷰의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었음에도 후련한 마음보단 불쾌하고 내내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은 것 같아 서럽기도 했다. 

 

6월 18일, 박사 디펜스를 마치고 연구실 사람들과 축하 회식. 진정한 해방감. 홀가분.

 

예민하다는 게 도움이 될 순간이 과연 있긴 한 걸까. 대화 중 미묘하게 변하는 표정, 발표 중 점차 굳어져가는 표정, 발표가 진행될수록 떨어져 가는 관심이 모든 게 가슴을 콕콕 찔러가며 생채기를 냈다. 은연중에 이미 내가 전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나눈 대화가 다른 사람도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내가 말 실수를 해서 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한건가 수십번 곱씹으며 지쳐가고 사람들의 말 한마디, 톤 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하루종일 의미를 이해하려는 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흔히 on-site 인터뷰는 bi-direction이라고, 그들도 나를 평가하지만 나도 그곳이 괜찮은 환경인지 평가하는 그런 기회라는데 경험한 모든 반응과 행동들이 red flag로 느껴지니 과연 지금 내가 경험한 게 진정 red flag로 여겨질 만한 것들인지 혼란스러웠다. 

 

좌절로 시작했던 감정은 분노로 이어지고 분노가 가라앉고 나니 다시 간절함이 올라왔다. 한참 분노했을 땐 오퍼가 오더라도 안 가는 게 맞겠다 싶다가 그럼에도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 능력 있는 PI이니, 혹여 그가 내가 원하는 인간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참고 버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며 다시 오퍼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5. 6월 18일 목요일: 결정 지연 안내

 

논문 디펜스가 18일로 잡혀있었기에 혹여나 18일, 그 직전에 리젝 소식을 듣게 되면 디펜스까지 영향을 미칠 거 같아서 발표가 나더라도 디펜스 이후였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디펜스가 마무리되고 축하 회식을 위해 레스토랑으로 이동하는 길에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의도치 않은 지연이 있어 다음 주 수요일까지 업데이트를 주겠다고 했다. 메일을 받은 당시엔 떨어진 건 아니니 다행이다 넘겼는데 곱씹을수록 왜 딱 정해 수요일인지, 다른 candidate의 인터뷰가 주 초반에 있거나 이미 top candidate에 오퍼가 갔고 결정을 수요일까지 하기로 정한 건가 오만 생각을 다 하며 수요일까지 기다렸다.

 

6. 6월 24일 수요일: 드디어 오퍼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오퍼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메일 알람이 올 때마다 심장이 앉았다. 집에 머물면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 학교라도 가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교수님께 메일이 왔다. 오퍼를 주고자 하며 내가 수락하면 좋겠다는 메시지. 머리를 말리다 말고 울었다. 드디어 끝이구나, 이마저 떨어지면 졸업 전에 어디서든 오퍼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겠구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던 때 결국 받은 오퍼. 유일한 오퍼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포닥 지원할 힘도 남아있지가 않아서 느꼈던 red flag들은 모두 못본채하고 일단은 가서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고민 없이 오퍼 수락. 

 

긴 글이 됐지만 그럼에도 못쓴 감정이 훨씬 많을 만큼 이 자리 지원하는 과정 하나로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일 년쯤 뒤에는 이 글을 보며 내가 오해했었구나 혹은 맞았지만 그럼에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생각하고 있기를. 종종 교수에게 구두 오퍼를 받고 HR로부터 공식 오퍼가 오기 전에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있다.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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