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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몰아서 쓰는 며칠 동안의 일기.
지난 금요일에만 마음 아픈 소식을 두 가지나 들었다. Rao 교수님 방의 박사과정 신입생 Ellen이 며칠 째 안보이길래 그 방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할머니께서 위독하셔 이번 학기 등록을 취소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마음이 아팠다. 다음 학기에 돌아올 예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안 돌아올 것만 같다. 지난 몇 주간 Ellen은 끊임없이 실험실과 교수님 오피스를 오가며 시달리고 있었고 앞으로의 몇 년을 생각한다면 안 돌아올 확률이 크지 않을까. 그리고 Frank. 아버지께서 췌장암이라고 하신다. 병원에서 진단하기론 앞으로 6개월이 남으셨다는데 너무 빠르게 뇌, 간, 골수 등으로 전이가 일어나고 이미 의식까지 흐려지신 상태라 Frank는 앞으로 길어봐야 한 달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내일만 두 건의 데이트가 잡혀있다고 웃으며 상대의 사진을 보여주는 그의 상태로 보아 다행히 우울감에 젖어 사는 건 아닌 거 같아 다행이지만. 부디 내 가족이 늘 건강하기를, 그리고 나도 이곳에 있는 동안 몸 건강히 지낼 수 있기를 빌어본다.


Autoclave의 고장은 주말까지 내내 나를 괴롭혔다.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BRF 건물의 Autoclave를 간신히 빌려서 멸균해야 하는 팁과 실험에 당장 필요한 배지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비를 뚫고 갔다. 보통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멸균이 30분도 되지 않아서 끝나길래 신기해하며 열었더니... 배지가 거의 폭발하다시피 넘쳐흘러 병에 남은 게 거의 없었다. 결국 이날 실험도 못하고 예정에 없게 토요일로 모든 실험이 미뤄졌다.


Saurabh과 망연자실하여 돌아와 교수님과 면담까지 끝내고 나니 이미 20시가 넘었다. 몸도 마음도 잔뜩 지쳐 집으로 돌아와 먹는걸로라도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라면에 떡볶이까지 끓여먹었다. 다른 유학생 일기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음식을 선택했다가 살이 많이 쪘다는 에피소드는 꼭 등장하는데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거 같다. 특히 아이스크림. 화날 때마다, 뭔가 하기 싫을 때마다 자꾸 손이 간다. 몸에 안 좋을 걸 알면서도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이 떨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


토요일은 10시쯤 실험을 시작해 19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이날도 역시나 Autoclave 1차 시도에서 폭탄이 되어 흩어져 버린 배지로 인해 적어도 2시간은 지연됐다. 알고 보니 우린 계속해서 Liquid mode가 아닌 Gravity mode로 진행하고 있었고 압력을 내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액체가 폭발하듯 팽창한 것이었다. 근데 애초에 여러 mode가 있는 Autoclave도 처음 봤는데 예상이나 했겠냐구. 여하튼 점심으로는 아직 구매한 Meal plan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Saurabh과 판다익스프레스에 갔다. 음 맛이 나쁘진 않지만 역시나 음식에 비해 가격은 비싸다.

이날 받은 포춘쿠키는 "New challenges and adventures await". 지금 겪고 있는 Chanllenges/Adventures 만으로도 차고 넘치는걸? 더 이상은 받고 싶지 않은데 포춘쿠키가 저주를 퍼붓는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날 Saurabh은 포춘 쿠키에서 두장의 운세가 나왔다. 이런게 진짜 포춘이지.


지난주부터 가고 싶었던 월마트를 일요일에 드디어 갔다. 아침 11시 33분 버스를 타는 게 목표였는데 깜빡 잊고 하지 않은 연구실 일을 처리하느라 결국 1시 33분 버스를 타고 2시쯤 도착했다. 1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쇼핑은 온 쇼핑몰을 다 둘러보느라 2시간으로도 부족했다. 더 둘러보고 싶은데 1시간 텀인 버스시간을 맞추느라 급하게 마무리하고 나왔다. 분명 버스를 다시 타고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물건을 끊임없이 집어 든 탓에 돌아오는 길에 쓰러져 죽을 뻔했다. 월마트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6분,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서 12분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집에 와 들고 온 물건의 무게를 재어보니 17kg. 무모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비닐 백에 든 상태로 들고 왔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구입한 쓰레기 통에 모든 물건을 담아 안고 오다 보니 팔이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먹을 게 풍부해졌다.


짐을 풀고 샤워까지 하고선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새로 사 온 커피를 타 먹으려 물에 타는데 웬걸, 커피가 녹지를 않는다. 하, 인스턴트커피인 줄 알고 산 커피는 알고보니 기계를 통해 내려먹어야 하는 원두 가루였다. 얼마 전에는 Unsweet 맛인 줄 알고 subtly sweet 커피를 두통이나 사 오질 않나 바보짓은 늘어간다. 이날의 바보짓은 끊이지를 않고 스테이크를 구울 때에도 계속됐다. 스테이크를 굽는 동안 기름이 튀는 게 싫어 프라이팬을 막겠다고 막 설거지 한 그릇을 위에 덮었다. 물이 뚝뚝 흐르는 그릇을 생각 없이 기름 위에 얹은 탓에 기름은 폭발하며 사방 군데로 튀기 시작했고 결국 혼비백산하는 사이 스테이크는 타버리고 주방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이젠 웃프다는 말도 안 나오고 그냥 허망해 한참을 쌍욕을 해가며 주방을 치웠다.


Saurabh는 종교와 관련된 숙소(?)에 살고 있는데 월 렌트비에 점심이 포함되어 있어 무료로 먹을 수 있고 일반 학생도 7.5$ 정도에 먹을 수 있다고 해 어제와 오늘 나도 따라가 봤다. Center for Global Engagement (CGE)가 위치한 건물의 1층에서 11:30-14:00까지 음식을 제공하는데 전반적인 베이스가 인도음식이라 어제의 점심은 만족도가 최상이었다. 다만 오늘의 점심은 분명 태국식 코코넛 카레라고 했는데... 메뉴가 바뀐 게 틀림없다. 어제보다 양도 적고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지만 내일의 점심은 Saurabh이 좋아하는 kofta라는 메뉴라고 하여 한번 더 도전해볼 예정!
그리고 오늘은 정말 듣기 힘든 Research Best Practices in Human Sciences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안 그래도 안 들리는 영어, 한국말로도 익숙하지 않은 윤리 쪽 이야기를 영어로 듣고 있자니 아무리 주의를 집중해도 2시간 가까운 수업 내용 동안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 내용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상황에 오늘 수업부터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주제와 관련해 찾아온 논문을 발표하며 토론을 하는 상황이라 더 수업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사실 과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해서 주말 내내 녹음해온 파일을 돌려 듣고 syllabus를 몇 번을 정독하고서야 겨우 파악해 과제와 발표를 준비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순서는 무난하게 잘 넘길 수 있었다. 다만 내 다다음 순서였던 남미, 혹은 중동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학생은 결국 발표를 하지 못했다. 과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내용을 찾아온 거 같다고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곤 순서를 넘겼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르는 것을 물을 수 있게 다른 학생의 이메일을 묻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남 일 같지가 않아서 괜히 마음이 아파 눈물까지 나오려 했다. 그래도 이 수업에 원어민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초조하고 이질감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모두가 웃음을 터트릴 때 왜 웃는지 모르지만 일단 따라 웃는 게 나 하나는 아니라는 사실이 나름의 위안으로 다가왔다. 이제 미국에 도착한지는 한 달, 개강한 지는 2주 차, 과연 이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약간의 변화라도 경험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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