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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의 시간은 00:37분, 온도는 34도. 예보를 보니 새벽 7시쯤 돼야 간신히 28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달궈질 예정이다. Dallas에 막 도착하고 트램을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가 5시가 좀 넘었을 때인데 39도였다. 40도가 그리 놀랍지 않은 텍사스라 그런지, 한국에서도 본 적 있는 온도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덥긴 해도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따갑게만 느껴졌다. 더워서 힘들긴 하지만 확실히 습하지 않아서 '더워 미치겠고 죽겠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하튼.

 

내내 이슬비가 내리던 인천국제공항, 나는 제1여객터미널

8월 2일, 한국은 흐리고 비가 내렸다. 전날 밤 미친듯한 번개와 천둥에 암막커튼을 치지 않고선 번쩍이는 빛에 눈이 부셔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전날에 혼자 짐 싸면서도 눈물이 나서 울고 가족사진 챙기려 앨범에서 고르면서도 몰래 울었던 터라 과연 공항에서 울지 않을 수 있을지 심란했다. 누구 하나 울어버리면 다 같이 울어버릴 것 같았고 그러면 미국 가는 비행 내내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슬플 것 같았다. 

 

넉넉하게 도착했는데도 체크인하는데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려 막상 앉아 마지막으로 서로 얼굴 볼 시간은 간신히 30분 정도가 남았다. 커피를 시켜두고 앉아 가족들에게 이걸 조심하라 저걸 조심하라 근심 어린 잔소리를 듣다 보니 곧 들어갈 시간. 마지막으로 서로 한 번씩 안아보는데 간신히 참았다. 애써 괜찮은 척 밝게 웃어 보이곤 뒤돌아 걸어 들어가면서 내내 울었다. 짐 검사가 끝날 때까지 북받쳐 울다가 간신히 진정됐는데 엄마가 가방에 몰래 넣어둔 편지를 읽으면서 다시 대성통곡. 나이 스물여덟에서야 집을 떠나는 캥거루, 엄마 아빠가 나이 들어갈수록 어쩔 수 없이 자꾸 돌아가신 후를 상상하게 된다. 근 2년간 엄마가 많이 아프면서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나이 들어버린 것을 목격한 후로는 더 쇠약해지기 전에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최대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드리고 싶었는데 이제 몇 년간은 그럴 수 없다는 게, 어느 한순간 마주하지 못한 세월만큼 더 늙어버린 엄마를 갑작스럽게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손에 늘어가는 주름이 난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슬픈지. 몇 달, 혹은 몇 년 뒤 마주할 엄마의 얼굴과 손에 부디 너무 많은 세월이 더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지.

 

도착하기 1시간 전. 옆으로 보이는 반가운 도시 오클라호마, 그리고 왼쪽엔 치와와?

13시간으로 예정되어있었지만 12시간 30분정도만에 도착했다. 최근 또 허리가 안 좋았어서 긴 비행 동안 괜찮을지 걱정했는데 역시나 끊어질 뻔했다. 항공사에서 나눠준 베개를 쿠션 삼아 버텼는데 오히려 비행시간이 7시간을 넘길 쯤부터 허리 통증은 점점 완화됐다. 마비가 됐던 걸까. 비빔밥 > 모닝빵 샌드위치 > 오믈렛으로 이어지는 식사, 빠짐없이 클리어하고 레드와인도, 커피도 받아마시며 위장 쉴 순간 없는 비행을 했다. 거의 이주 가까이 하루에 4-5시간만 잤어서 비행기에서 골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잠들어있던 시간은 다 합쳐도 2시간 정도뿐이었던 것 같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미리 다운로드하여 간 드라마 내일과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며 보냈다. 구련 멋있어... bb

 

화창한 DFW 공항, 바깥 온도는 39도를 기록 중.

도착해서 나가는 입국 수속하러 가는 길. 아직까지는 바깥 온도와 마주할 일이 없이 편안하던 상태. 길었던 입국심사 줄에 비해서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었다. 이번에 같이 FSU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S님(아직은 말을 못 놓았다. 다음번엔 조금 더 친해져서 말 편하게 하자고 해야지! 심지어 동갑인데!)이 옆 레인은 심사하는 분이 생김새도 그렇고 태도도 매우 깐깐해 보인다고 다른 레인에 서자고 했는데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적당히 유쾌하고 깔끔하게 여권 확인, I-20 확인, 지문등록 순으로 군더더기 없이 진행하고 보내주셨다. 그렇게 S님은 Tallahassee로 가는 환승 편을 탑승하러 가고 나는 밖으로... 치사하게 다음날 비행기라 환승 연계 짐도 못 부치고 아예 다음 날 와서 다시 체크인부터 해야 한단다. 30만 원 더 싼 비행기 잡고 몸이 고생, 그렇지만 아직은 고생해도 괜찮을 나이니까! (그런데 Dallas에서 숙박비, 교통비 따지고 나면 그렇게 남는 장사도 아니....ㄴ) 

 

DART, Orange line.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Hidden Ridge station까지는 15분 정도. 숙소에서 Downtown까진 35분정도.

시내로 가는 트램을 타기 위해서 D터미널에서 A터미널로 이동해야만 했다. 분명 터미널을 연결하는 열차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딜 봐도 어디로 가라는 안내 표지가 없다. 일단은 밖에 나와서 둘러보니 터미널 간 셔틀을 운영하는 거 같다. 좋은 열차는 어디에 두고 낡은 버스만 다니는지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항 보안검색까지 모두 통과한 상태에서만 열차를 타고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댈러스로 입국해서 이미 밖으로 나온 상태거나 공항에 도착해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기 전 터미널 간 이동할 방법은 셔틀이 유일! 아 그렇지만 A-B-C-D 터미널은 도보로도 연결이 되어있긴 하다. E만 유일하게 도보로 갈 수 없는 터미널. 걸어서 이동하는 게 옳은 선택일지는 미지수.

 

여하튼 셔틀을 타고 A터미널 A10번 정류장에서 내렸다. 한 할머니께서도 트램을 타셔야 해서 나와 이동 방향이 같았는데 서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며 헤매다가 어렵게 어렵게 찾았다. 일단 터미널로 들어가서 한 층을 내려가야만 했던 상황. 도착하고서 오후 전용 PM Pass (3$)를 사고 나니 이번엔 어떤 열차를 타야 할지 할머니와 고민. 그 사이에 호주인 아저씨까지 동참하여 이 열차가 맞는 거 같다, 확실하다 한참을 이야기하고서야 타려 하는데 문을 안 열어주신다. 출발 직전에 열어주시는 건가 또 뚱하게 서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열린다는 표지판을 보고선 셋이서 멋쩍게 탑승. 덤엔더머 세명이었지만 좋은 동맹이었어. 어찌 되었건 원하는 대로, 제대로 탑승할 수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호주인이라,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호주라 (그리고 발음이 또렷해 알아듣기 좋았어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고 싶었는데 어떤 노숙자 같은 사람이 계속 그 호주 아저씨에게 말을 거는 바람에 나는 기회를 못 잡았다. 괜히 그 숙자 씨가 나에게까지 말 걸까 봐 조용히 핸드폰 하는 척을 했다. 언뜻 들으니 숙자 씨는 호주아저씨에게 대마를 권하고 있었다. 호주아저씨는 착하게 웃으며 거절하시고. 세상에 저렇게 성격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이 지구가 훨씬 더 평화롭고 어딜가나 마음이 편안할텐데 말이야. 그러나 세상에는 숙자씨 같은 사람들도 많고 그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다. 쓰다 보니 자꾸 의식의 흐름대로 글이 가지만 오히려 좋아.

 

무리지은 흑인들이 너무 많았던,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웠던 Dallas Downtown

30분 정도만에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까지 하고 나니 벌써 7시가 다되어간다. 다운타운까지는 넉넉잡아 1시간 정도가 걸리니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이미 늦은 상황.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보고, 안 하기엔 아쉬워 일단은 숙소 밖으로 나갔다. 아 물론 PM pass 끊어 놓은 거 한 번만 쓰고 버리기 아깝기도 했고. 햇빛 받으며 트램 속에 앉아있으니 너무 나른했다. 따지고 보면 날을 거의 샌 상황이니 그럴 만도. 내 핸드폰과 지갑을 보고하기 위해 절대 잠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잠깐씩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다음부터는 정말 주의해야지! 여긴 한국이 아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뭔가를 먹기엔 아직은 무섭고 팁도 내고 싶지 않아 간단하게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사 가려했다. 주변 마켓을 찾아보다가 그나마 가까우면서 제일 '안전'해 보이는 마켓으로 향했다. 도착하고서 보니 내가 원하는 가공된 음식보다는 식료품 위주였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샐러드가 유일했다. 구운 연어 한 조각이 들어간 샐러드가 12.9$.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써브웨이를 갈걸 한참을 후회하다가 다시 걸어가기엔 시간이 부족해 그냥 샐러드에 콜라를 들고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분명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몰 사이즈를 달라고 했는데... 계속 직원분께서 우유는 어떤 걸 원하냐고... 우유 필요 없다고 그냥 물 들어간 아메리카노를 원한다 이야기했지만 결국 주문되어 나온 건 라떼. 거기서 또 이거 안 시켰다, 아메리카노 달라고 하기엔 이미 지쳐 그냥 들고 나왔다. 내 잘못인지, 직원의 잘못인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커피 하나 원하는 대로 못 주문하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 여행 때마다 넘치던 자신감은 어디 가고 이렇게 쭈글거리고 있는 걸까. 

 

호텔로 걸어오던 길과 소스범벅이 된 화장실 타올.

9시가 넘어 트램에서 내려 호텔까지 걸어오는 길, 인적이 드물지만 가로등도 잘 켜져 있고 간간히 아기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모님들도 보여 안심. 우연찮게 바라본 하늘, 한국에서도 보던 달을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반가웠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샐러드도 먹고 음악 감상도 하며 쉬고 싶었다. 초반에는 순조롭다 싶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결국 반쯤 먹은 샐러드를 엎었다. 흐허허.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하루를 망치며 마무리!

 

미국에서 자신감을 가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 같다. 지금은 미국인들 눈치 보느라, 분위기 살피느라 정신없는 중. 이렇게 미국 입국, 그리고 첫날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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