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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프다. 지난 주말 이틀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시뻘겋게 충혈된 상태로 따끔거리던 눈은 어제부터는 불쾌한 이물감이 하루 종일 이어지더니 오늘 아침부턴 빛을 볼 때마다 눈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까지 생겼다. 꽃가루 때문에 눈병이 생긴 건가 싶어 더 미루지 않고 안과로 향했다. 근데 통증의 원인은 예상 밖이었다. 검은 자위, 각막의 표면이 벗겨졌고 염증이 생기고 있단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이런 상태이기 힘들다며 자꾸 다친 적이 있느냐 물어보시는데 그럴 리가. 일단은 2시간마다 넣어야 하는 안약, 하루 4번 넣어야 하는 항염제, 자기 전 넣어주어야 하는 연고까지 처방받고 이틀 뒤 다시 상태를 보기로 했다. 안과를 방문한 게 거의 7-8년 전이라 정기검진까지 받을 수 있을지 여쭤봤는데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이 눈 상태로 검진은 불가능하단다. 처방전을 받을 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이틀 뒤 다시 검진할 때 눈 상태가 호전됐으면 시력 검사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안내해 주셨다. 안약 열심히 넣어야지!
원래는 연구실 사람들과 뚝섬유원지에서 치맥을 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덕분에 G형은 주말 동안 찾았던 여행지에서 수제 맥주를 공수해왔고 작은 J는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준비해왔는데 일기예보 상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해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구르다 약속을 다음날로 미뤘다. 그리고 큰 J, 작은 J와 함께 급하게 결정된 저녁 약속 연남.

큰 J, 작은 J (둘다 이니셜이 J라 나이순으로 큰, 작은)는 내 좁고 폐쇄적인 사회적 교류에서 요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가만히 앉아 숨 쉬고 있는 걸 가장 큰 낙으로 여기는 나를 불러내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는 고마운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연남동을 가게 됐다. 어느 골목 하나 빠지지 않고 감성으로 충만한데 그만큼 사람이 너무 많은 연남동. 이 좋은 곳에 북적임과 주변의 소음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좋아하는 만큼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강렬하게 자리 잡아 발길을 붙잡는 이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은 인내를 요한다. 원하는 가게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웨이팅과 치열한 자리 눈치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항상 차선, 차차선의 행선지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의 테마는 '동남아'로 잡고 저녁을 먹을 곳과 10시까지 운영하는 카페를 골랐다. 지금 다시 보니 카페는 동남아를 테마로 한 카페가 아닌데 우리들끼리 카페를 발견하고선 분위기가 동남아 카페 같다며 동남아 투어로 이름을 붙였다. 발리문은 평일 기준으로 40팀만 받는 바람에 지난번 연남 때는 웨이팅 기회조차 얻지 못했었다. 오늘도 당연히 그럴 것 같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웬걸? 연남동으로 향하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부터 생각보다 사람이 없다. 그렇게 도착한 발리문에 빈자리는 없었지만 대기 1번을 받아 기다린 지 10분여만에 착석할 수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인도네시아 음식 전문점인데 문화권이 비슷해서인지 말레이시아에서 먹었던 음식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세 번의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어디서 무슨 음식을 먹던 맛이 너무 감동적인 데다가 내 입맛에 꼭 맞아서 말레이시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정도로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 보통 현지 음식이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아무래도 다소 생경하고 강렬한 현지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단 한국화를 어느 정도 하는 바람에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여긴 진짜다! 치킨른당의 소스를 한입 머금는데 말레이시아의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황홀해졌다. 음식으로 대신하는 여행이 이런 느낌이구나 확실히 깨닫는 순간.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손쉽게 갈 수 있는 동남아 여행은 항상 차선이었는데 요즘엔 오히려 유럽권보다도 동남아로의 여행이 너무 그립다. 그 향수를 어느 정도 덜어준 발리문, 최고의 선택이었다.

행복하게 배부른 상태로 카페를 찾아 나선 길, 약간 허한 배를 채우겠다며 푸하하 크림빵을 하나씩 사 들었다. 예전에 익선동의 끝, 낙원상가 근처 어딘가에서 크림빵을 사 먹은 적이 있는데 비슷한 맛이다. 크림이 가득 들어있어서 베어 물 때마다 괜히 포근, 푸근해지는 그런 행복한 맛. 적당히 선선한 밤에 조용한 골목길에서 셋이 크림빵 하나씩 베어 물고 걷고 있으니 괜시리 웃음이 난다. 연구실 G형이 좋아하는 젤리를 사다 주고 싶어서 독일 젤리샵으로 향했는데 허, 화요일은 휴무란다. 근데 어차피 휴무가 아니었어도 이미 마감시간인 20시를 넘겨 살 기회는 없었을 것 같다. 네이버 지도를 대충 본 게 화근.
그렇게 젤리는 포기하고 경의선 숲길의 끝 쪽에 위치한 카페로 향하는데 홍대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카페에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신호다. 역시나 도착한 카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예! 근데 입구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지금 봐도 오해할만한 게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에 'TO GO -2000'라고 적혀있는 것을 우리 멋대로 테이크 아웃은 20:00 까지라며 그럼 지금 문 닫는 준비 중인 것 같다고 한참을 토론했다. 한참 뒤에야 앞의 '-'를 알아보고 테이크 아웃 2,000원 할인이라는 본 의미를 깨달았다. 2 옆에 쉼표 하나만 있어도 덜 헷갈릴 거 같은데. 한동안의 바보짓 후에 들어간 카페는 생각보다 넓고 정말 많은 손을 들여 꾸며두었는데 인위적이기보단 자연스럽고 산만하지만 방향성 있는 너무 예쁜 카페였다. 온 카페 이곳저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식물 때문에 한여름엔 어떨지 궁금해지는 이곳이 마음에 쏙 든다. 조도를 한껏 낮춘 빈티지 수도꼭지가 설치된 화장실마저도 취향 저격이다.

한참을 둘러보다 1층 야외 자리에 자리 잡았다. 음료를 받아들고 한참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고 있다 보니 예정되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신발 젖을 걱정 없고 우산 아래로 들이닥칠 비 걱정 없는 지붕 아래서 듣는 빗소리는 참 좋다. 비내음도 한껏 풍겨오는데 모든 게 완벽하다. 오늘의 연남은 시작부터 끝까지 좋은 기분으로 가득하다. 이 좋았던 기억은 다시 연남으로 오도록 이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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