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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쏘카의 교훈

Ian Park 2022. 3. 27. 00:44

원래의 계획은 대림에서의 양꼬치였다. 한참 전부터 J, S 누나와 함께 꼭 가자고 몇 번을 다짐했던 양꼬치 집이 있었으나 번번이 가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서 아쉬움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또 약속이 잡히게 되었고 계획은 점점 커져 오송에서 자취 중인 J의 집을 아지트 삼아 J가 강력 추천한 뼈찜을 먹고 그 다음날 다 함께 대림으로 올라가 양꼬치까지 먹고 헤어지는 완전한 식도락 코스를 완성했다. 다만 J가 오송에서 먹고 싶은 것들이 많다며 대림을 코스에서 제외하자고 제안하면서 완전한 1박 2일 오송 여행이 됐다(지금 생각해 보니 J는 아무래도 서울에 올라가는 게 귀찮아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문제는 뼈찜 가게가 청주 시내 쪽이라 택시를 이용해야만 했고 생각보다 먼 거리에 택시비는 왕복 4만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럴꺼면 차라리 쏘카를 빌려서 뼈찜도 먹고 주변 카페도 들르며 편하게 돌아다니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세명 모두 운전면허는 있으나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나 혼자였고 아직 면허 딴지 1년이 되지 않은 나는 쏘카를 빌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J의 명의로 쏘카를 빌리고 운전은 내가 하는 것으로 신이 나서는 결정했고 그렇게 불행은 시작되었다. 

 

둘째 날 방문했던 카페 '프롬 썬'. 쏘카 해프닝이 없었다면 더 편안하게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오송역에서 J와 조우하고 예약된 아반떼를 찾아 앱에서 지시하는 대로 차의 각 부분의 사진을 꽉 채워 다섯 장씩 찍어 업로드했다. 앞으로 다가올 불행은 예상도 못 한 채 뭐 이렇게 절차가 귀찮냐고 잔뜩 볼멘소리를 흘리며 서둘러 사진 촬영을 마무리하고 차에 올라탔다. J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S 누나까지 픽업하여 곧바로 뼈찜 가게로 향했다. 가는 중 예보된 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빗줄기가 제법 굵어질 때쯤 뼈찜 가게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뼈찜 가게로 들어가려다가 우연히 차를 보게 됐는데 차 오른쪽 하단부가 선명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긁혀있는 게 아니겠는가. 갑자기 피가 차갑게 식으며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혹시나 지워지는 얼룩인가 싶어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았지만 페인트가 완전히 벗겨져 검은 속살이 완전히 드러난 상태였고 뒤쪽 하단부는 여러 갈래로 긁히다 못해 금까지 가 있는 상태였다. 뼈찜이 조리되기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린다 하여 주문해놓고 가게 밖으로 나오는 두 사람에게 차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렇게 우리 셋은 말을 잃었다.

 

기다리는 시간 일단 장이라도 보자고 홈플러스로 향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차라리 택시를 탔더라면 마음 편히 놀 수 있었을 텐데 왜 운전을 하겠다고 했을까, 나한테 운전을 맡긴 두 사람은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을까, 운전은 내가 했으니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나한테 있는데 수리비 보상을 같이하려면 참 짜증 나겠다 등등. 홈플러스에 도착해서도 머릿속은 온통 차 생각과 수리비 생각으로 가득 차서 먹을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뭘 사야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애써 괜찮은 척, 아닌 척하며 '일단 벌어진 일, 잊고 놀자' 다짐해 보아도 기분은 이미 바닥까지 가라앉아 과연 내일까지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며 놀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물론 일이 벌어진 것도 맞고 걱정을 해야 할 상황도 맞지만 소심한 성격 덕분에 걱정은 모든 감정을 압도해버려 말 그대로 사고가 정지해버렸다.

 

어찌저찌 뼈찜까지 먹고 차로 15분쯤 거리에 있는 카페를 향해 운전을 하는데 그새 트라우마가 생겨 운전이 너무 무서웠다. 비까지 내려 시야는 좁고 머릿속은 시끄러워 이대로 내려 차를 반납해버리고 싶었다. 사고 쳐놓고 호들갑까지 떨면 참 한심스러워 보일 것 같기도 했고 운전을 그만하겠다하면 안 그래도 가라앉은 분위기 되돌이킬 수 없게 망쳐버릴 것 같아 속으로 엉엉 울며 차를 몰았다. 설상가상 중간에 들리려던 샌드위치 가게는 문을 닫았고 카페로 향하는 도로는 공사 중이라 비포장에 무척 좁았다. 그렇게 카페까지 들렀다가 야식을 사들고 J의 자취방으로 돌아왔는데 몇 시간 동안의 걱정으로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잠이 쏟아졌다. 반쯤 잠든 상태로 야식을 먹다가 그대로 기절. 

 

이틀 내내 비 오고 흐리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역에 도착하고 나니 비로소 해가 비치기 시작한다. 역시 가는 날이 장날.

다음날 아침, 산책 겸 나와 걸으면서도 '쏘카 긁힘 견적', '쏘카 수리비' 따위를 검색하며 혼자 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그나마 마지막 일정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차를 반납하고 오송역에 걸어가다가 다시 불쑥 수리비 이야기가 나왔다. S 누나의 아는 지인은 렌터카를 빌렸다가 덤터기를 써 300만 원을 물어줬다는 이야기로 분위기는 다시 싸하게 식었고 그렇게 우리는 찝찝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집으로 향하는 KTX 안, 한참을 졸다가 J로부터 온 카톡에 잠이 깼다. 다급하게 온 카톡은 처음 차를 타기 전 찍어둔 사진에서 발견한 스크래치의 흔적이었다. 쏘카 앱을 통해 촬영한 사진이라 남아있지 않은 줄 알았던 사진들은 알고 보니 앨범에 별도의 폴더로 저장되어 있었고 이를 발견한 J가 온 사진을 뒤져 스크래치가 찍힌 사진을 찾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차 사진을 찍을 때 오른쪽에 차가 주차되어 있어 가까이에서 확인하다 보니 아래쪽을 눈여겨보지 못해 스크레치를 육안으로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온 긴장과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며 한동안 S 누나와 환호하고 다행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지옥 같았던 1박 2일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은 확실하게 얻었다.

 

"절대 남의 명의로 빌린 차를 운전하지 말 것" 그리고 "보험 없이 운전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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